My heartfelt story

아버지, 구정 인사드려요!

rejungna 2008. 2. 4. 00:14

엄마가 아프시다고 나를 불러서 태평양을 건너와 아버지 방에서 잠을 잔지 며칠이 된다.

내 몸에서 모든 energy 가 빠져나간 공황 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맥없이 방 안을 둘러보다가 아버지의 책장에 오랫동안 서있는 주인을 잃은 책들을 무심히 훑어본다.

아버지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시기 전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으며, 어떤 믿음에 망가진 몸을 기대셨었을까...

새삼스럽게,

책장 속에 남겨진 그리운 아버지의 손 때가 묻은 책들과 앨범들을 하나하나씩 온 마음으로 쓸어가면서 넘겨본다.

 

유럽과 일본의 역사와 여행 정보, 컴퓨터 관련 서적 몇 권이 제법 전문적인 내용의 책들이다.

고장난 육체와 지친 마음을 치유받는 기적을 바라신 듯이 정독하셨던 천주교 교리와 신앙 체험을 적은 책들,

그 중에서 자주 언급하셨던  "오상의 비오 신부" 란 책도 눈에 들어온다.

또 아버지의 일생 동안 가장 여러 번 읽고 또 읽으셨던 명심보감과 나의 마지막 책 선물이 되버린 한자사전,

정주영씨 자서전과 경제에 관한 책, 일본어 배우기 책,

동의보감 같은 건강에 관한 책들,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미국을 대변하는 영어 사전과 회화 책도 무심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많이 치워져서 공간이 넉넉해진 책장 속에 아직도 남겨진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집으면서 계속 눈을 닦는다.

아버지의 손때와 마음을 담고 있는 책들의 페이지 한장한장들이 뿌연 눈 길 사이에서 한꺼번에 춤을 추듯 얼룩얼룩하다.

다시 만져주고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있음에 숨을 죽이고 긴장하나 보다.

꼼꼼하게 소지품을 정돈하고 또 정돈하시던 그 긴 손가락 사이에서 제 구실을 하던 자잘한 물건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나의 시선을 잡기 위해 꿈틀거리는 듯하다.

그 동안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왠지 꽂혀있는 책 모습이 애처럽다.

살아계실 때에는 그토록 귀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도 세월과 함께 관심 밖 저 멀리 밀쳐졌으니까.

 

20  번 숫자까지 세월따라 순서대로 정돈된 앨범 안의 웃는 모습들은 내 심장을 콕콕 찌른다.

순간적으로"어머니어머니 우리 어머니" 란 제목의 책이 내 시선에 꽂혔다. 70 인의 시인들이 어머니에 관해 쓴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인데, 언제나 아버지의 목소리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단어는 어머니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책장을 넘겨보면서 펼쳐지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피의 수축과 이완 속도의 박자마저 뒤틀어져서

가슴이 아리기까지 한다.

그립구나. 아~~ 나의 아버지!

곧 구정인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 가슴에 계속 둥우리를 짓고 계신 듯이, 아버지의 가슴에는 19 세 때에 돌아가셨던 할머니가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다.

아마도 내가 아버지와의 인연을 정돈하거나 잘라내지 못하는 끈질김은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뵙지도 못했지만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잠시 오셨다가 갑자기 돌아 가셨던 이모 할머님을 기억하는 덕분에

다행이도 할머니의 모습을 추론할 수는 있다.

아버지와 같이 마른 체격에 키가 크시고 이지적이고 뾰죽한 코를 가지셨을 것 같다.

그토록 보고 싶어하시고 그리시던 할머니를 하늘서 싫컷 보시고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셨을 것이란 생각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아버지도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시겠지!

당신이 어머니를 그리시던 그 마음 그대로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 지를...

 

<모정>

김 소 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를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

 

 

어! 많이 들었던 노랫 말인데... 그 노래가 소월의 시에 붙여진 곡인 줄은 오늘서야 알았다.

 

나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옛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기억력이 엄청 좋으셨던 분이라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병상에 누워서 생생하게, 지난 기억들을 정확하게

날짜까지 나열하시면서 재미있게 들려 주셨었다. 몸이 비틀리는 고통 중에서도 진통제 덕분에 조금 여유를 얻으시면

고향 이야기, 조상들 이야기, 군대 시절 이야기,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 춥고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

사업을 시작하게된 배경 이야기, 여행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친구 분들 소식 등등...

끝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누에가 입에서 실을 토해내 듯이 술술 풀어놓으시면서 가끔은 호탕하게 웃기 까지 하셨다.

끝까지 옆에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위생실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데 한자가 생각나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어디를 제일 가보고 싶으시냐는 내 질문에, 만녈설이 녹아내리는 폭포가 있는 스위스와 미국에 있는 내 집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목이 마르니 사이다, 쥬스와 물을 준비해 달라고 내 이름을 힘내어 부르시기도 하셨다. 

 

남자같이 씩씩하고 잔 감정이 적으신 대장부같은 엄마와는 달리,

섬세하고도 따뜻한 마음을 진솔한 이야기와 대화로 멋지게 풀어내실 줄 알아던 내 인생 최고의 응원군이셨던 분!

우리 집에 오는 방문객들은 누구라도 따뜻한 식사 대접을 받고 집을 나설 수 있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짱이신 아버지 덕분에 부러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리움>

최 수 영

 

 

그리움이 강으로 흐르던 날

바람은 하늘로 흘렀다

봄날은 붉은 빛으로

할 말 없이

꽃으로 돌아와

맺힌 얼굴

하나

손짓 머무는 바람

말없는 깊음에서는

그립다

 

 

속 깊이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그리움!  

읽고 또 읽어 본다.

<누군갈 사랑한다는 자체 만으로도 그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란 말이 생각난다.

그 대상이 누구이건간에,

외롭고 지칠 때에 마음에 떠오르는 누군가는 내가 받은 선물이다. 아버지는 내가 받았던 큰 선물이었다.

오늘 밤에는

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던 잠자고 있던 추억들이 다시 밖으로 튕겨져 나와서 보석같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며칠 후면 구정인데... 아버지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을 때이다.

 

2004 년 구정 때의 생각이 난다.

그 때의 아버지는 상상도 하실 수 없었지만,

이 세상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님께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인사를 올리셨으며,

나는 아버지의 손놀림에 매료되었었고 그 지극 정성스런 태도에 탄복했었다. 

그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4 년전이며,

나는 이제 아버지처럼 가장 그리운 분께 정성스런 인사를 드릴 때가 온 것이다.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Father, I know you are watching over me. Can you see that I am writing this in thought of you at your desk in your room?

Mom is working hard to get better. She acts as a little girl, even though she is a stong, independent woman.

Don't worry! I'll take care of her well while I am here.

I hope I can feel you soon at Lunar New Year!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누워 계시는 납골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