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곳들(여행)

한국여행- 변산반도: 새만금, 고사포, 적벽강, 채석강, 곰소

rejungna 2010. 10. 18. 12:53

또 한번의 한국 여행을 뒤로하고 LA로 돌아왔다. 3주 반을 그 곳서 지내면서 이번 여행같이 바쁜 적이 없었던 느낌이다.

그래도 9월 30일에서 10월 4일 까지 4박5일 간의 시간을 내어서 전라도 지방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다. 사실 꽤 오래 전에 이미

계획된 여행이었지만, 다른 일정이 빡빡한 탓에 하루를 줄인 떠남이었다. 내 차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km 를 달렸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많은 여행지를 지나쳤거나 직접 땅을 밟았으며 또한 그 지역의 향토적인 음식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여행 일정은 이러했다.

분당을 출발해서 부안의 새만금 방조제와 변산반도 일대를 돌아 본 후에 변산해수욕장 "바다횟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곰소에 들려 

광주에서 첫밤을 잤다. 둘째날에는 땅끝마을 해남으로 달려서 한국의 최남단을 밟아보고 그 곳의 한옥마을에서 두번째 밤을 지냈다.

점심은 칼국수, 저녁은 쌈밥과 인삼막걸리였다. 셋째 날에는 벌교의 조정래 문학관과 벌교역전수산시장에서 팔팔뛰는

전어회를 구입해서 점심으로, 그리곤 낙안읍성으로 가서 가야금병창을 감상하고 순천의 "대원식당"에서 정식을 먹고 짐을 풀었다.

넷째날의 이른 아침에는 두시간 가량 순천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산책길을 따라서 나즈막한 산에 올라 순천의 미에 흠뻑젖었다.

이어서 조정래씨가 태어났다는 선암사를 구경하고 담양 국수거리의 "진우네 국수"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메타 세코이아 가로수길을

감상하면서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로 향했다. 남원을 지나고 장수에서 맛난 사과를 싸게 구입한 흥분을 누르면서 전라도와는 작별. 

이어서 충청도로 올라와서 금산의 인삼약초 시장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금산의 명물인 어죽, 도리 뱅뱅이와 인삼 튀김을 먹고는

유성온천에 짐을 풀었다. 다섯째 날 아침에는 호텔 온천 물에 잠시 몸을 담그곤 우거지탕 식사 후에 바로 분당으로 향했다.

 

4일의 시간만으로 한국 전라도의 관광지를 모두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지역 기름진 땅이 선사하는 가을의 황금물결의 찬란함을

충분히 즐긴 여행이었다. 시, 군, 면, 리, 읍 사이의 잘 포장된 국도 주변에서 가을 바람에 살랑이며 막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

아직도 머릿 부분을 제외한 벼의 줄기는 여름의 잔재인 녹색이 남아있지만 - 가을의 벼가 익어가는 모습은 싱그러움을 넘어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은 시원함을 선사했다. 국도를 따라서 달리는 차 안에서 본 나무 빽빽한 나즈막한 산, 풍만한 아낙네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의 언덕, 가늘은 선으로 보이는 작은 시골 길, 빨린 사과가 대롱대롱 매달린 점찍힌 것 같은 사과나무들, 길 옆에 늘어선 

화사한 코스모스, 맨드라미, 국화, 그리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벼들의 춤은 내 눈을 많이도 호사시켜주었다.

 

 

생각나는대로 첫날 여행지인 새만금방조제와 변산반도 일대 여행을 되새김질해보겠다.

 

새만금 만큼 한국뉴스를 통해서 자주 언급되어 멀리까지 알려진 지명이 없을 듯하다. 33km에 달하는 거대한 방조제를 바다에 세우고

그 안의 갯벌과 바다를 막아서 육지로 탈바꿈해서 한국의 땅을 넓히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새만금 공사다. 가난하고 농사지을 땅이

모자랐던 한국이 농산물 자급자족을 꿈꾸면서 밀었던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예기치못한 부수적인 문제를 내포한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인간의 이익 보다는 자연 회손의 위험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전에 반대하지만, 무모하기

보다는 대단하다는 첫인상을 가졌다. 그 넓은 바다를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기대가 엇갈리고

격렬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울렸는지 눈 앞에 펼쳐진 새만금방조제의 위용에서 연상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육지의 땅도

중요하지만 보이지않는 물 속의 땅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씁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하나의 단순한

project 측면만 본다면 감탄스러웠다. 그러나 재해를 주지 않는데도 자연에 반기를 들고 이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발상과 행동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후유증은 훗날에 우리의 자손들이 당면하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거대한 면적의 갯벌과 바다가 육지가 된다.

생태계의 보존이냐 개발이냐? 나라가 발전할 수록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구와 후손들을 위해서.

 

 

 

서해바다 끝쪽으로 돌출된 반도가 변산반도이다. 한국의 유일한 반도 공원이며 20번째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변산은 크게

내륙쪽의 내변산과 해안쪽의 외변산으로 나누어진다. 나는 외변산인 고사포 해수욕장, 적벽강, 격포 해수욕장, 채석강, 수성당을

둘러보고 일몰이 보이는 변산해수욕장의 어느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사포 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에서 서쪽으로 약 3Km가면 나온다. 변산반도 3대 해수욕장의 하나라는데, 해안따라 펼쳐진 모래가

참으로 고왔다. 해안 길 바로 위 모래사장에는 소나무들이 줄지어 혹은 옆으로 삐지면서 머리가 맞닫은 채로 하늘로 쭉쭉뻗어있다.

싱그러운 소나무의 향기는 해안의 바람과 바다내음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국의 소나무는, 특히 해송의 운치는 남다르다.

아마 바다의 밀물과 썰물 그리고 바다 고유의 짠바람이 해송만의 멋스런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송림 사이에 텐트를 치고

일박 정도하면서 바닷가 하늘과 친구됨도 멋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세의 기억이 재현됬다는 하섬이 바로 눈끝이라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내 인생에서 고사포 해수욕장을 다시 방문할 기회는 없겠지만 바닷물이 열릴 때에 하섬까지 걸어가 봄도

아주 낭만 적일 듯하다.

 

 

다음으로 찿은 곳은 적벽강이었다. 이름을 들으면 강인 듯한 연상을 주는 지명이다. 도착해서 서있는 사인을 읽어보니 영어로는

적벽강 절벽(cliff)이었다. 그래서 나는 멀리 보이는 섬같은 바위 절벽을 일컷는 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벽강은 후박나무

군락지인 격포리부터 융두산을 감싸는 약 2km의 해안선을 일컷는 말이라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기괴한 암벽 절경이 마치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던 적벽강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적색을 띈 높은 절벽과 동굴이 멋진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차를 주차하고 계단을 내려서서 내딛었던 바닷가의 돌들은 마치 붓으로 근 듯한 선들이 그려진

울틍불틍하면서도 반질반질한 검은 색이었다. 그만 그 광경에 마음이 꼿혀버렸다. 와~~~~~

 

 

화산의 폭발로 생긴 현무암인지. 진흙이 다져져서 퇴적된 이암인지 실트암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돌을 보고 만져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여행의 진미를 다 맛본 기분이었다. 사실 미국에 살면서 red state라고 불리는 아리조나주에 위치한 그랜드 케년과

그 주변, 그리고 캘리포니아 비치의 다양한 절경을 보면 자연의 엄청난 힘과 신비, 그리고 아름다움의 절정에 완전히 녹아본 느낌을

갖는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원만한 절벽은 작아보이고 시시해 보이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다. 그 탓인지 적벽강을 전부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절경보다는 단순하게 바닷가 검은 돌에 마음을 빼았꼈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무수하게 널러져있는 작은 조약돌들은

왜 그토록 마음에 와닿던지... 주차장으로 올라오는 길에 얼른 6개의 작은 돌을 주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한국 여행의 의미있는

기념품으로 미국에 가지고 갈 요량으로.

 

 

다음 행선지는 죽막고을을 경계로 남쪽 지역인 채석강이었다. 채석강 오른쪽이 격포 해수욕장인데 한국서 해가 가장 늦게 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채석강 또한 강이 아니고 썰물 때에 드러나는 격포항 일대의 1.5km의 절벽과 바다를 총칭한다고 한다. 이 곳 역시

바닷물에 의해서 침식된 퇴적암이 만들어낸 기암 괴석으로 유명하다. 지명의 유래도 적벽강과 비슷하게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친 달에 반해서 이를 잡으려고 뛰어들어서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나는 층층이 쌓여 한겹한겹씩 벗겨질 것 같이 보이는 퇴적암 절벽보다 바닷물의 힘에 의해서 둥글지만 다양한 모양새의 돌틈

사이에 고인 물에 사는 생물체가 더 경이로왔다. 굴껍질인 듯한 껍질들이 하얗게 붙은 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물은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얕게 남겨진 물 속에는 내 손톱만한 게, 가제들과 이름모를 조개들, 그리고 역시 이름 모르는

바닷 생물들이 여유롭게 헤엄을 치다가 내 인기척과 손가락 움직임에 바위틈으로 재빨리 숨어버리는 모습이 너무도 예뻣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생명체의 신비로움이 좋았으며, 어려서 갯벌에서 굴을 많이 따봤다는 엄마의 모습이 상상의

날개가 되어 피어 오르기도 했다. 감동스러운 자연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행복했던 곳이다.

 

 

그리고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 가까이의 바다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에 수성당이 있다. 이곳은 바다의 수호신인

수성 할머니와 그 여덟명의 딸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수성 할머니가 어부들을 위해서 바닷길을 고르고 편히해준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으로 아직까지 제사를 지내는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성당의 주차장에서 수성당과 반대쪽을 보면 바다를 끼고 도는 듯한 

산책로가 있다. 이를 따라 걸어가면 점차로 내륙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면서 작은 오솔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길을 걷고 있으면

약초인 듯한 길옆 풀들이 뿜어내는 향내가 마치 한약방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무, 길, 풀, 공기, 냄새가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기분으로 마치 동화 속의 길을 걷는 듯한 감흥을 받는다. 이 때에 만난 아래 사진과 같은 버섯 재배하는 온실은 처음 보았다.

고르게 세워진 나무 토막에는 수많은 버섯들이 숨쉬면서 자라고 있었다.

 

 

여행 첫날 이었던 9월 30일의 밤을 광주에서 보내기 전에 들른 마지막 장소는 염전과 젓갈로 유명한 곰소였다. 기념으로 미국에

가져올 새우젓을 구입했다. 곰소란 지명은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지명들 중의 하나이어서 들은 적이 있기에

내심 반가웠다. 잠시 내 머리에 남겨진 등장 인물들을 회상했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많은 곳들과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지금처럼 나중에 돌아 볼 수있는 꺼리가 생기므로 여행을 떠나나보다.

고국 방문을 한다는 것만도 기쁜 일인데, 이렇게 지방의 작은 도시들를 여유롭게 방문했던 나는 복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