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여름이니까 더위는 당연한데도 그 느낌이 싫다.
그래서 그런가?
델타 코로나 변이로 요즘 매일 새 확진자들이 증가하는 뉴스에 코로나가 지겨워서인가?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에서 4주째 500백만 에이커를 태우고 있는 딕시산불( the Dixie Fire)이
이제 미국서 가장 큰 화재가 됐다. 더우기 주초에는 골드러시 때에 형성된 Greenville 마을을
초토화해서 오래된 건물과 역사가 잔재도 없이 벽돌 몇개만 남고 없어진 어이없음에서인가?
모든 이슈에서 대립이 첨예해서 답답하기만 한 정치 때문인가?
여전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반대하고 등교시에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공화당 주지사들의
빤한 정치적 야심에 기가차서인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단순한 삶으로 판에 박힌 듯한 느낌에 지쳐서인가?
남극 얼음 위에서 신나게 미끄럼타고 놀면서 종종 걸음을 걷는 황제펭균이 기후변화 때문에 멸종될
지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석 연료를 태워 만들어진 탄소가 고온을 꽉 붙들고 있어서 얼음이
빠르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요즘 기후변화 현상은 우리와 후세가 살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게
한다. 후세라고 말하지만 먼 훗날이 아닌 10년 뒤, 20년 뒤다.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로 심각하다.
영국에서는 바닷가에 자리잡은 고성이 물에 잠겨서 인류의 멋진 역사적 발자취를 잃게됐다고 한다.
멋진 바다 전망에 매혹되어서 엄청 비싼 값을 치른 태평양 해안가 주택 주인장들의 마음을 어떨까?
아직은 여유로울까? 아니면 생각이 많을까?
생각해보면 더위나 추위는 삶의 일부다. 사람은 날씨를 바꿀 수 없다. 일기예보에 맞추어 대책을
세우거나 미리 크게 투자해서 불편을 예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날씨는 자연적 환경이기 때문에
불평할 대상이 아니다.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하는 우리인 것처럼 날씨를 단순하게 소화하려고
애쓰면 된다. 기후변화로 우리의 고통이 심화됐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만들었고 달리 방도가
없어서 '받은 밥상' 심정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공 도서관이 있다. 동네 도서관이다. 그런데 입구 계단 아래의 한쪽 길에
3개의 텐트를 치고 두 가정이 산다. 전부 몇 명인 지는 모르지만 젊은이와 중년의 사람들이 함께한다.
그들의 얼굴은 그을렸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는 꽤재재하다. 하지만 웃고 있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당당한 얼굴로 산다. 소유한 자동차를 텐트 앞에 주차하고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한다.
홈레스 텐트는 보기에 안좋다. 강한 남가주의 햇빛을 막기 위해서 대부분은 텐트 위에 여러 겹으로
다양한 색의 두꺼운 비닐을 둘렀다. 눈에 확 들어온다. 주위는 온전한 가구과 그렇지 않은 가구들이
섞여서 어지럽다. 천막 화장실도 있다. 내 손자가 쓰고 버린 빨간 유모차를 텐트 옆에 두기도 했다.
물건을 보관하는 커다란 비닐 통과 종이 박스들이 텐트 한 쪽의 바깥을 무겁게 누른다. 쓰레기통이
없어서인지 크고작은 갖가지 쓰레기가 무질서하다. 이들은 노골적인 날씨에 어떻게 대책을 세울까?
나는 이곳을 자동차로 혹은 일요일 산보 길에 지나칠 때마다 텐트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한다.
이들은 피치못할 개인적인 사정을 안고 험한 세상에 나름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들 때문에 도서관이 재개방될 때에 사람들이 방문을 회피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생도 문제다. 당연지사 벌레와 병균도 많고 특이한 냄새가 진동한다. 빨리 LA 시정부가 이들을
임시 숙소로 옮겨주면 좋겠다. 그래서 시에다 텐트의 존재를 리포트했다. 시에서는 두 번 똑같은
이메일 답변을 보내왔다. "시간을 요하는 문제라고"
이들에게 나와 같이 신고하는 사람들은 삶의 균형을 깨는 방해자이다. 시정부는 들어온 불만을
차곡차곡 모아서 시정에 반영한다. 드디어 지난 주에 LA 시의회는 공원과 도서관 주위의 홈레스
텐트를 규제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 달 중순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 홈레스
권리보호단체는 LA 시장 주택 앞에서 데모를 하고 안으로 물건들을 던졌다.
살다보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부딪칠 때가 있다. 이 두 이익의 간극이 크지 않으면
넘어가지만 클 때는 고민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적인 사람들이 백신에 관해서
가짜정보를 무차별하게 뿌리는 것은 간극이 큰 경우다. 홈레스들의 텐트 철거 요구는 나 개인의
이익이자 공공의 위생 문제다. 범죄도 많고 화재를 많이 낸다. 이들의 생존권이 동네 사람들의
기본권 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살다보면 이 처럼 명확한 답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럴 때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자기 변명과 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아량으로 대해야 한다. 물론 윤리와 책임 의식만큼은 분명히 갖고서.
더위나 추위는 불청객이므로 그렇게 취급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물론 인류의 재앙을 만드는
기후변화는 예외다. 기후 변화의 천천함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으로 최대한으로
물자와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일상의 불편한 날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넘긴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에 봄이 느껴지고 오곡이 노랗게 익는 가을 기분이 든다.
반짝이는 흥분이 결여된 지루한 여름날이지만 창문틈으로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놀라움과
감사함을 갖으면 쨍쨍한 햇빛이 잠시 힘을 읽는다. 홈레스 텐트에서 스며나오는 이상한 냄새를
'사람 사는 표징'이라 여기고 그냥 지나치면 여유로운 마음이 된다. 여름 낮은 길고 더위는
끈질기다. 삶은 날씨와 상괸없이 앞으로 나가간다. 내일이 턱을 받쳐서 후퇴가 없다.
견디다 보면 가을이 된다.
아름다움의 한 가운데 by 이 지엽
마른 땅 위에 / 한 나절 비가 내리고 / 트랙터 지나간 뒤 / 깊게 패인 자국들! /
세상의 모오든 길들은 / 상처가 남긴 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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