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artfelt story

5월 아태문화유산의 달과 정체성

rejungna 2022. 5. 23. 09:55

5월은 한국서는 가정의 달이다. 그런데 미국서는 아태문화유산(Asian Pacific Heritage Month)

달이다. 아시아와 태평양계 미국인의 이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들의 희생과 미국 발전에의

공로를 기린다.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특별한 달을 맞이해 내가 겪은 4.29 폭동과 최근 큰 인기리에 상영된 드라마

파친코이야기로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을 사유하고 싶다. 4.29 폭동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아시안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성실하며,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소수인종이다. 이런 관념 때문에 한인은 1992 4.29 폭동의 희생양이 됐으며, 코로나19 발발 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쿵 플루한 마디에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가 339% 급증했고,

일본에서는 재일 한국인의 대대손손 일본 출생 자손들마저 무시와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폭동 발발 시 나는 LA 부촌 동네에 위치한 전국적 규모의 부동산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다.

집에서 2 블락 거리의 예쁜 상가에 위치한 운치있는 직장이었다. 한국서 대학다닐 때에 몇 달

동안 과외 교사를 해 본 것을 제외하고는 인생 첫번째의 직장이었다. 그래서 아주 즐겼고 열심히

했다. 부동산 에이젼트 직업은 나에게 미국서 사는 법을 터득시켜준 고마운 일자리였다.

 

4.29 폭동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무법천지였다. 폭동 5일 동안 많은 한인 업소들이 불타고

약탈당했다. 경찰은 손을 놓고 부자동네만을 지켰다, 언론은 잿더미로 변한 한인타운의 피해

현장을 리커스토어 주인 두순자씨가 흑인소녀 나타샤 할린스를 총으로 쐈던 1년 전 사건과

연관지어 보도했다.

 

덩치가 큰 15세 나타샤 할린스는 도둑질을 일삼던 나쁜 흑인들 때문에 오렌지 쥬스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았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훔치려는 행동을 했지만 손에는 2달러를 들고있었다.)

힐린스는 매고 있던 가방 안을 보려던 두순자를 주먹과 가방으로 마구 때렸다. 분노를 참지못한

두순자씨는 나가려고 등을 돌린 할린스를 뒤에서 총으로 쐈다. 흑인들과 언론들은 들끓었다.

하지만 재판 시에 앞뒤 여러 정황을 참작한 판사는 집행유예의 가벼운 판결을 내렸고, 이에

흑인들은 한인들에게 더욱 분노했다. 그 당시 리커스토아와 마켓을 운영하던 한인들이 정말

많이 흑인 강도들 손에 살해당했다.

 

 

폭동은 발발 1년 전 1991년 3월 3일 과속운전을 하던 로드니킹이 달아나자 그를 잡아 무참히도

때렸던 4명의 백인 경찰들이 1992년 4월 29일 무죄 판결을 받자 순식간에 일어났다. 누군가가

폭행 장면을 근처의 아파트에서 비디오로 찍어서 언론 제보를 했기 때문에 판결은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다. 흑인들의 차별과 압박 역사를 가진 미국 사회에서 백인과 흑인의 내제적인 문제

때문에 흑인들을 상대로 험한 지역에서 장사를 하던 한인들의 새우등이 터진 것이다. 두 개 갱

그룹이 손잡고 가담하면서 무수한 방화와 약탈이 일어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억울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잠이 들지 않던 밤에 한인들의 대화 창구이던 라디오코리아에

귀를 기울였다. 그 때 Mrs.조 라는 분이 평화대행진을 제안했다. 바로 이것이었다. 나도 동참해서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목소리내기와 다른 각도에서의 언론 조명이라고 거들었다.

이렇게 전화선이 이어지고 이어져 여론이 형성되었다. 수만명의 한인들이 53일 타운에 운집했고

이어진 행진으로 우리의 억울함과 탄력성을 알렸다.

 

(겁쟁이인 나는 행진에 참가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불탄 한인타운 상가들를

 돌아본 것이 고작이었다. 정말 기막힌 광경이었고 등골이 오싹했다. 참가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경찰이 내가 살던 동네를 잘 지키고 있던 것을 모르던 나는 시누님이 사시던 한인타운의

 타운하우스에 머물렀다. 미국 주택은 앞 마당, 대문, 창문 등 사면이 오픈되어 있는 반면에

 타운하우스는 막혀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민자의 무지였다. )

 

 

법률적 도움이 가능하다며 앞집 부인이 뛰어오고, LA 많은 학교와 단체들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폭동 후의 화요일 회사 전체 미팅에서는 여는 때와 같은 의제뿐이었다. 나는 공유할 폭동

인쇄 자료를 들고 기다렸다. LA가 뒤집혔는데, 한인들은 큰 피해를 보았는데, 시민과 소통해야

하는 부동산 회사가 폭동을 언급조차 안했다. 그냥 넘길 수 없어 발언하는 도중 어느 에이전트의

큰 눈과 마주쳤다. 그 눈은 가고 싶지 않은 길로 내몰린 마음을 담은 듯했다. 미팅 후 돌린

인쇄물의 대부분은 곧바로 내 메일박스에 놓였다. 더 강력한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을 후에 후회했다. 

 

AppleTV+가 제작한 8부작 파친코드라마는 재일한국인(자이니치) 4세대의 삶을 다룬 역작이다.

작가, 극작가, 감독과 프로듀서 등 거의 모든 부문을 코리안 아메리칸이 담당했다. 덕분에 승자의

기록인 역사가 패자의 눈으로 더욱 자유롭게 재구성된 것 같다. 미국에 살면 자유, 권리, 공정성에

대해 배우고 생각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이민진 작가는 대학생 시절에 일본에 살던 미국인 선교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선교사는

자이니치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을 훼손당한 후에 건물서

뛰어내린 중학생 남자 아이 이야기를 전했다. 이민진은 이를 듣고 잊지 못했. 또 일본계인

남편을 따라 일본서 살면서 차별을 직접 경험했다.

 

많은 자이니치가 차별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서 파친코업에 종사한다. 자이니치가 성공하려면

3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파친코업, 한국 음식점과 같은 자영업, 그리고 예능과 체육계의 길을

걷는 것이다.

 

드라마는 1910, 1930, 1980년대를 과거와 현재로 넘나든다. 그래서 책을 읽지않은 사람들은 처음

한 두편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인공 선자와 첫사랑 고한수, 아들 노아, 남편인 목사 백이삭과

아들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의 파란만장한 삶의 고통과 꿈을 담았다. 일본에 살아도

영원한 이방인인 재일동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후편 예정으로 아직 드라마화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선자의 큰 아들인 노아의 삶에 주목했다.

백이삭을 아버지로 사랑한 노아는 일본인이기를 꿈꾼다. 영특해서 공부를 잘하지만 다른 한국

애들 처럼 출생 때문에 친구와 사회로 부터 차별받고 성장했다.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지만

친아버지가 야쿠자 2인자의 사위 고한수라는 것을 알고는 잠적해 일본인으로 살면서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민다. 아무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만 회사 대표만 그의 출생을

의심한다. 하지만 발설하지 않는다. 16년이 흘러 고한수 덕분에 노아를 찿은 선자가 만나러온

날에 노아는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인종차별은 의식 무의식으로 모두에게 스며들었다. 한국, 미국, 일본 어는 나라나 같다. 인간은

그룹을 형성하고 그 일원이 아닌 사람을 배척한다. 다수는 자신의 힘을 믿고 힘을 행사하려고

한다.  소수는 다수의 반복되는 영혼없는 모진 관행에 고통 당한다. 각자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단단히 해야 그나마 상처를 덜 주고 덜 받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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